모노레일의난장판 :: '정리함'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2007. 10. 21. 13:47

이외수가 화난 이유

한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분이
국어와 국사를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무슨 망언인가
이 분이 과연
대한민국의 언어와 역사를
얼마나 알고 계시기에
저런 망언을 서슴지 않는 것일까

모든 문인들이
영어로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그러실 바에는 차라리
미국으로 이민이나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명박씨가 서명한 날자는 6월 6일
현충일이다
그리고 이명박씨가 지칭한 당신들은
순국선열들이다

그 분들이 목숨을 바쳐 지키신 문화유산을
소멸 또는 약화시키겠다는 발언에
어떤 타당성이 있는가

나는 정치와 무관한 견지에서
이 글을 올리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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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외수님의 홈페이지
관련자료: "이명박 영어로 국어수업 주장, 국어 말살정책"

2007. 10. 17. 01:06

비시(非詩)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 송경동

"도시 미관을 해치는 불법 노점상을 근절하겠다"는 방침으로 고양시는 수백 명의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대대적인 노점상 집중단속을 벌였다. 지난 11일 이를 막는 노점상과 용역업체 직원들의 싸움에서 8명의 상인이 다쳤다. 다음날 새벽 고양시 한 공원에서 한 노점상이 목을 매달았다. 부인과 함께 지난 10여년 간 떡볶이와 붕어빵 등 먹거리 장사를 해오던 48세의 이근재씨였다.

비시(非詩)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 송경동
 
  - 불량식품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내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좋아했던 붕어빵을 13년동안이나 구워 오종오종 어린이들에게는 발길 멈추는 꿈을 주시고, 배고픈 이들의 배를 값싸게 채워주시며, 가난한 모임방에 훈훈한 인정이 배달되게 하시고, 그 한 푼 거짓 없는 노동으로 자식들 공부도 시켜주셨다는, 붕어빵 아저씨 故 이근재 선생님 영전에 드림.
 
  어떤 그럴듯한 표현으로 당신을 그려줄까
  13년 동안 밀가루값 가스값 빼면
  이제 100원 벌었고 200원 벌었고 300원 벌었고를 헤아리며
  변함없이 붕어빵만 구웠을 당신의 무미건조한 삶을
  당신의 옆에서 또 그렇게 순대를 썰고 떡뽁이를 팔던
  당신의 아내를
 
  어떤 그럴듯한 은유로 그날을 보여줄까
  2007년 10월 11일 오후 2시 고양시 주엽역 태영프라자 앞
  트럭을 타고 갑자기 들이닥친 300여명의 용역깡패들과 구청직원들에게
  붕어틀이 부서지고 가판이 조각나고
  조각난 리어카라도 지키려다
  부부가 길바닥에서 얻어터지며 울부짖던 날을
 
  어떤 아름다운 수사로 그 밤을 형상화해 줄까
  잘난 것 없는 죄, 못 배운 죄 억울해
  붕어빵 순대 떡뽁이 팔아 대학공부시키는
  자식들 마음 아플까봐 몰래 숨죽여 울며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여보, 미안해. 여보, 미안해 사죄하며
  부르튼 아내 손 꼭 잡은 채 잠들지 못했다는 그 밤을
 
  어떤 이미지로 그 아침을 새겨줄까
  뜬눈으로 샜을 새벽 4시 30분
  일용일이라도 나갔다 오겠다고 나간 아침
  어디론가 떠돌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설움 참지 못하고
  길거리 나무에 목을 매단 당신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 줄까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구조적으로 덮어줄까
 
  500여 가구의 노점상 양민들을 거리에서조차 몰아내기 위해
  31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는 고양시청
  30명도 채 안 되는 노점상 양민들의 생존권을 빼앗기 위해
  150명의 폭력배를 고용한 구청
  그 공무수행을 돕기 위해 나와 있었다는 경찰
  쓰레기처럼 짓밟히되
  저항하면 공무수행위반으로 구속하겠다는 경찰
  그렇게 폭력배를 고용한 관공서를 경찰이 보호하며
  양민을 향한 폭력이 공무로 수행되는 나라
 
  이런 민주주의가 판치는 세상을
  어떻게 그럴 듯하게 문학적으로 미학적으로 그려줄까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읊어줄까
  국화꽃 같은 누이로 그려줄까
  어떤 존엄한 시어를 찾아줄까
  그러면 나의 시도 어느 연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러면 나의 시도 어느 평론가들로부터 상찬받을 수 있을까
  그 애매함으로, 그 모호함으로, 그 규정되지 않음으로
  그 깊은 서정성으로, 그 새로운 해석과 역사성으로
  어떤 문학사의 말미에나마 기록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 더러운 세상
  이 엿같은 세상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저들이 당신들의 생존권과 터전을 가진자들을 위한 법으로 들어엎듯
  당신들이 또한 이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없는자들의 새 법을 만들어 들어엎어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무슨 시를 쓸까
 
  여보, 미안해
  여보, 미안해
  붕어빵틀을 잃어버려 미안해
  당신의 순대를
  당신의 떡뽁이를
  당신의 도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아, 게로니카의 학살도 이보다 잔인하진 않았으리*
  이렇게 일상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보편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평범하지는 않았으리
 
  * 김남주 선생의 시구절을 빌어 옴.

출처 : [기고] 비시(非詩)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한 붕어빵 아저씨의 죽음 앞에서…"

 

2007. 10. 15. 23:24

책 읽는 아오이 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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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예뻐라

2007. 10. 14. 14:32

지도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지난 봄에 베란다의 화분을 정리할 때의 일이다. 꽃봉오리가 맺혀 있지 않은 화분을 다 버리려니까 옆에 있던 큰언니가 미처 올라오지 못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 며칠만 더 두고 보자고 했다. 그런데 글쎄 이 주일 만에 베란다 가득 꽃들이 활짝 피어나는 게 아닌가. 저걸 버렸으면 어쩔 뻔했나. 그러나 그때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이파리만 남아 있는 화분에 그렇게 예쁜 꽃이 숨어 있을지.......
  그러나 눈 밝은 사람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싹이 앞으로 크고 소담스러운 꽃을 피울지, 또 어느 한철 자기 혼자 피었다가 지는지, 피고 나서 많은 씨를 맺어 널리 퍼뜨릴 수 있는지.
  그때 초라한 화분 안에서 활짝 핀 꽃을 보는 것이 바로 지도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 피어 있는 꽃을 알아보는 것은 누군들 못 하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잠재력을 보고 밀어주는 사람.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합산으로 사람을 보지 않고 그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합산이라고 믿어주는 사람이 지도자일 거다. 그 가능성을 발견하면, 어린 싹일 때는 비바람을 막아주고 물도 주는 사람. 그러다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시련을 이기며 혼자 크는 모습을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 '찍히는 건' 정말 일생일대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 한비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中

2007. 10. 13. 00:46

가난한 자는 왜 이명박을 지지하나 - 박노자

오슬로대학에서 ‘한국 사회·정치’ 수업을 할 때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 중의 하나는 극우적 색채가 강한 보수의 대표자 이명박의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미 근대적 노동계급이 다 형성된데다 비정규직화와 같은 최근의 사회 재편으로 근로 인구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됐을 터인데, 어떻게 해서 ‘부자들의 대표’가 계속 50% 안팎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은 필자에게 배우는 노르웨이 학생들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산업화된 나라들 중에서는 미국 다음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과연 가장 보수적인 곳이 아닌가라고 묻는 이들도 있다.

(중략)

‘부자의 후보’ 이명박은 수많은 가난뱅이들의 표를 동원할 만한 상징적 자원, 즉 ‘박정희를 떠올리는 1970년대 자수성가형 경영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단순히 기아를 면한 것부터 지가 상승으로 떼돈을 벌어 대학 교육·취직 기회 확충으로 출세에 성공한 것까지 ‘수혜’ 정도가 다양하지만, 다수의 한국인들은 1970년대에 빚졌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물질적 삶의 개선이 기반이 되어, 수많은 이들이 거기에다가 애국주의부터 ‘실패자는 무능력자다’ 등의 성공주의 이데올로기까지 박정희 시절의 온갖 국가주의적·자본주의적 관념에 그대로 포섭되고 말았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종교, 지역, 계급, 고용형태별로 분열돼 고질화된 갈등 속에 고착돼 있는 한국 사회에 ‘1970년대의 신화’는 거의 유일한 통합 기제로 작동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 신화를 바탕으로 해서 이명박이 대권 쟁취에 성공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1970년대는 초고속 개발과 함께 극심한 불평등을 낳았으며, 4∼5% 이상의 성장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진 오늘날에 이 불평등은 계속 악화일로로 심화됐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든 여권이 기적적으로 정권 유지를 이루어내든 앞으로 5∼10년 안에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계급 갈등들이 폭발의 지점까지 확실히 갈 것이다. 그때에 가서 좌파 세력들이 노동계급과 영세민의 투쟁을 이끌어 이 사회에 믿을 만한 평등·복지적 대안을 제시해 국민적 신뢰를 받아야 우리가 비로소 죽은 독재자의 망령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미국, 일본과 함께 가장 보수적 사회’의 불명예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가난한 자는 왜 이명박을 지지하나 - 박노자 (한겨레21)

2007. 9. 23. 21:07

Highway - Quruli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OST)



언젠가 그대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게 될거야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우리는 또 다시 고독하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
거기엔 또 다시 흘러버린 1년이라는 세월이 있을 뿐인 것이다.

2007. 9. 22. 20:55

<88만원 세대> 우석훈 인터뷰 中 / 알라딘

http://www.aladdin.co.kr/artist/wmeet.aspx?pn=20070828_wooseokhun&start=main


위기가 오면 난파선에서 쥐가 먼저 뛰어내린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처세술 책이 그 쥐가 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어떻게 해야 내가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건데, 그건 대중적 인기는 높죠. 반면 사회과학이나 경제학에서는 배를 가라앉지 않게 할 방법을 논의 하고요.

중략.

20대 문제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20대에게 난파선이 아닌 멀쩡한 배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죠. 이런 얘기들은 경제학이나 사회과학이 하는데 거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똑같은 얘기를 개인들한테 하면 거기엔 관심이 있고요. 기본 학문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흐름이죠.


중략.

대표를 만들고 스스로 조금씩 움직이기 위해서는 부딪히는 수밖에 없어요. 윗세대는 룰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요. 그들이 제시하는 룰을 하나씩 깨지 않으면 바꿀 방법이 없죠. 이를테면 고시를 보는데 거기에 부당한 문제가 나왔어요. 그럼 다같이 모여서 문제를 그렇게 내면 안 된다고 해야 그게 바뀌죠. 자기 혼자 방에 앉아서 ‘이번에는 떨어졌지만 내년에는 잘 풀어야지’ 해서는 답이 안 나와요.

싸워야죠. 안 되는 걸 안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죠. 그런데 20대가 싸워본 경험이 한 번도 없거든요. 소리 지르면 심장이 멎을 것 같다고 하고, 정색해서 말하면 바로 입을 닫아요. 그래도 싸움을 좀 해봐야죠. 정의롭고 명분있는 싸움 있잖아요. 나와는 상관 없어도 ‘저 사람들 불쌍하다’하며 나서서 싸우는 경험이 필요해요.

386세대는 지금도 ‘우리가 이런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 하면 광화문으로 모이죠.(웃음) 근데 20대가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하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그래도 참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 하죠. 그렇게 하면 실체가 못 되는 거에요. 프랑스의 68세대는 평생 한 번도 당한 적이 없어요. 10대때 한번 화끈하게 싸우고 ‘우리 건들면 알지?’하게 된거죠. 그 사람들은 은퇴해서도 풍요롭게 살게 되는 거에요. 혼자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안 그렇다는 거죠. 한 두 명은 살 수 있지만, 내가 그 한 두 명이 되긴 힘들어요.

우석훈이 말하는 88만원 세대는 지금 대한민국의 20대를 일컫는 말이다. '88만원 세대'는 20대의 95%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 아래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한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