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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25. 17:18

수선화에게 - 정호승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와 자존심이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너무 사랑스러워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이 바로 수선화이다.

외로움은 곧 자기애의 반증이다. 오직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외로움이다.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가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자기 자신을 동정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 그래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살아가는 건 중심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사진을 찍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빛이 과도할 때는 빛을 더 조금만 받아들이게
빛이 부족할 때는 더 많이 받아들여야 알맞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쉽게 감정이 과도해지는 계절에는 마음의 문을 조금 닫아둘 필요가 있다.
혹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추스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가을이 독서의 계절인가?(농담)

2007. 9. 18. 03:31

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 정호승

젊을 때는 산을 바라보고 나이가 들면 사막을 바라보라
더 이상 슬픈 눈으로 과거를 바라보지 말고
과거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웃으면서 걸어가라
인생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오늘을 어머니를 땅에 묻은 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첫아기에게 첫젖을 물린 날이라고 생각하라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분노하지 말고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침밥을 준비하라
어떤 이의 운명 앞에서는 신도 어안이 벙벙해질 때가 있다
내가 마시지 않으면 안되는 잔이 있으면 내가 마셔라
꽃의 향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듯
바람이 나와 함께 잠들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일에 감사하는 일일 뿐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무엇을 이루려고 뛰어가지 마라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가끔 저녁에 술이나 한잔해라
산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을 내려와야 하고
사막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우물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나에게 참 위로가 되는 한 줄의 글 귀.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가끔 저녁에 술이나 한잔해라"
그래, 내가 마셔야 하는 잔이라면 담담하게 마셔야겠지.
힘겹게 올라갔던 산을 싫어도 이제는 내려와야 할 시간이다.
힘들 때 한 토막의 시가 위로가 된다는 건 참 우스운 일이다.
우습고도 고마운 일이다. 아니 고맙고도 우스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