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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15. 00:27

서해안의 조삼모사 사태 / 우석훈

셰틀랜드의 가마우지를 가지고 특종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글이 있다. 움베르트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에 나온다. 이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담 후세인은 걸프전 때 세계적인 반전 여론을 높일 목적으로 원유를 해안에 뿌렸는데, 이때 검은 석유를 뒤집어쓰고 해변가에서 비틀거리던 가마우지는 <시엔엔>(CNN)을 타고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자, 이 가마우지씨를 다시 한번 만나보도록 하자.

“왜 가마우지씨는 세계적인 흥행이 분명한 한국의 서해안에는 오시지 않는 거지요?”

“네, 이번 사건은 예고된 것이 아니라서 미처 비행기표를 예약하지 못했습니다. 아쉽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원유로 목욕하고 비틀거리는 쇼는 생각보다 고난도라서 자주 하면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기 때문에, 저도 출현 횟수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뒤늦게라도 세계인들의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서 위로방문이라도 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아, 거기에는 이미 한국의 대선후보들이 가 있지 않습니까? 새만금 갯벌에 사시던 도요새씨가 어제 최근에만 벌써 세 번째 이사를 해야 한다고 푸념을 하시더군요.”

서해안의 원유유출 사태는 크게 보면 인도 보팔의 대참사와 여수의 시프린스호 사건과 같은 공업활동에서 벌어진 생태재앙과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근해 보호 실패에 의한 해양 생태계 파괴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길게 보면, 원유 수송 및 저장과 관련된 재앙이기도 한데, 서해 및 남해의 석유수송로와 거제도의 석유비축기지에서 이런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은, 이런 사건이 일회성이 아니라 항구적이라는 점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가 말하듯이, 도시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이렇게 엄청난 ‘위험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셈인데, 이 위험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건 우리나라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공업국가들과 주요 공장을 유치한 개발도상국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이며, 우리 모두는 그야말로 기도하는 심정으로, 제발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폭발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 외국 사태와 비교해서 한국의 서해안 원유유출 사태가 가지고 있는 차이점 한 가지가 분명히 있기는 하다. 불과 한 달 전에 국회에서 새만금특별법을 통과시킨 바로 그 장본인들이,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표정을 짓고, “이거 참 큰일입니다”라고 서해안 갯벌에서 천연덕스럽게 ‘생쇼’를 한다는 사실이다. 해안가의 원유는 시간이 지나면 생태계 복원 능력에 의해서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정동영과 이명박이 주창하는 새만금 개발은 시간이 지나도 복구되지 못한다. 잠깐 무서운 것은 무섭다고 하면서도, 영원히 무서운 것은 무섭다고 하지 못하는 우리, 전형적인 조삼모사이다.

지금까지 줄기차게 새만금 개발을 추진한 정동영식 조삼모사도 보통 아니지만, 시민운동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새만금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은 문국현식 눈치 보기도 보통 아니다. 차라리 무조건 개발만 얘기한 이명박의 일관성이 애교스럽다. 지금 우리나라의 골프장들은 사람들이 산에서 안타까워하는 바로 이 해안선과 갯벌로 내려가는 중인데, 지금 지켜야 한다는 그 서해안과 남해안의 갯벌들을 청와대 사람들은 ‘폐염전’이라고 일컬었다. 그래서 폐염전을 골프장으로 ‘재활용’하는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얘기들을 했던 게 불과 1년 전이다. 원유에 뒤덮인 해안가에, 지켜보는 사람을 바보로 여기는 조삼모사의 꽃이 탐스럽게 피어난다.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565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