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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 - 송경동
한미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
- 송경동
나도
여느 시인들처럼
꽃을,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
한 잔의 진한 커피
한 잔의 맑은 녹차와 어우러지는
양장본 속 아름다운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늘 거리에 서야만 한다
너희가 쓰다버린 850만 비정규직 쓰레기인간들에 대해
노래해야 하고, 일손을 빼앗긴 350만 농민의 시퍼런 절망에 대해
노래해야 한다. 미군기지에 밀려 다시 세 번째 생의 이주를 앞두고 있는
팽성 대추리 노인들의 얼굴 위에
너희들이 늘씬 퍼부어주던 포탄 선물을 받으며
피투성이로 울부짖던 이라크 아이들의 얼굴을 겹치며
다시 나는 거리에 서서 분노와 증오로
피 어린 시를 써야만 한다
그렇게 너희는 가만히 있는 나에게서
나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간다
아름다운 시를 빼앗아 가고
내가 좋아하는 내 영화를 빼앗아가고
내 친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이젠 그도 모라자
내가 쓰는 전기를, 통신을, 언론을, 가스를, 물을, 약품을
송두리째 모두 너희의 것으로 내어놓으라 한다
100원에 쓰던 것을 1000원에 사라하고
1000원으로 살 수 있던 생태적 삶을
10000원짜리 경제적 삶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라 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이젠 모두
너희의 허락을 맡고 써라 한다
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세계화라 한다
빌어먹을 이런 개똥같은 게 세계화라면
나는 내 온몸에 불을 싸질르고라도
전세계의 반민중적 세계화를 반대한다
이것이 21세기 선진 세계시민사회라면
난 정중히 그 세계시민사회에
아니오 라고 말할 것이다
나도 여느 시인들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다고만 노래할 수 있는
그런 해방된 사회를 가질 수만 있다면
거리에서 보낸 오늘 하루
나의 젊은 날도 헛되지만은 않으리
한낮의 꿈만은 아니리
아, 변혁을 노래하고 싶은 밤
아, 해방을 사랑하고 싶은 한 밤
실천적 시를 쓰는 송경동 시인의 새로운 시이다.
아, 나도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다고만 노래할 수 있는
그런 해방된 사회를 가질 수만 있다면
출처 : "한미 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