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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5.16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김남주
- 2007.05.08 수동카메라 필름빼기♡
- 2007.05.08 수동카메라 필름넣기♡
- 2007.04.27 젊은 사진가들에게 1
- 2007.04.22 생활의 발견 / 한겨레21
- 2007.04.22 천사를 죽이다 1
- 2007.04.20 한국 저널리즘의 실태
글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김남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김남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오월은 왔다 비수를 품은 밤으로
야수의 무자비한 발톱과 함께
바퀴와 개머리판에 메이드 인 유 에스 에이를 새긴
전차와 함께 기관총과 함께 왔다
오월은 왔다 헐떡거리면서
피에 주린 미친 개의 이빨과 함께
두부처럼 처녀의 유방을 자르며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벌집처럼 도시의 가슴을 뚫고
살해된 누이의 웃음을 찾아 우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를 뚫고
총알처럼 왔다 자유의 거리에
팔이며 다리가 피묻은 살점으로 뒹구는
능지처참의 학살로 오월은 오월은 왔다 그렇게!
바람에 울고 웃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일어나거라 쓰러지지 않았다
오월의 무기 무등산의 봉기는
총칼의 숲에 뛰어든 맨주먹 벌거숭이의 육탄이었다
불에 달군 대장간의 시뻘건 망치였고 낫이었고
한 입의 아우성과 함께 치켜든 만인의 주먹이었다
피와 눈물 분노와 치떨림 이 모든 인간의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아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학살의 야만과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노래하지 말아아 오월을
바람에 일어나는 풀잎으로 '풀잎'은
피의 전투와 죽음의 저항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학살과 저항 사이에는
바리케이드의 이편과 저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오월의 광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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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글
수동카메라 필름넣기♡
0번_카메라의 ISO를 필름 감도와 맞춘다.
6번_한 두번만 해도 충분해요
만든이가 밝혔듯이 조금 다른 부분은 있지만 초보자들에게는 충분할만한 내용. 그림과 글씨가 너무 귀여워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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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진가들에게
- 매그넘 전 회장 아바스가 젊은 사진가들에게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056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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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생활의 발견 / 한겨레21
▣ 황하일 철도노동자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는 학교에 가고 아내는 회사에 출근하고 없다. 까칠까칠한 입맛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수북이 쌓여 있는 빨래를 세탁기에 돌린다.
한 5년 전쯤 아내와 약속한 가사분담에 따라 내가 맡은 일이 설거지와 빨래다. 아내는 식사 준비와 청소를 한다. 나는 청소가 싫은데 아내는 빨래가 싫고, 나는 미각이 둔하고 아내는 요리 솜씨가 좋으니 서로에게 맞는 일을 찾은 셈이다. 아내가 처음 가사분담을 명확히 정하자고 했을 때, 나는 “서로 시간 날 때 알아서 하면 되지 뭐 그런 걸 인생 빡빡하게 정하냐”고 투덜댔지만, 아내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혼 이후 내가 말했던 방식으로 가사분담을 해왔으나, 이래저래 밀린 집안일의 대부분이 아내의 차지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 빨래를 개면서 아내와 아이의 향기를 발견하고 문득 행복에 젖는다. 노동운동에서도 이런 생활의 발견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진/ 연합) |
설거지와 빨래가 순전히 내 일이 되고 나니, 그전에 ‘시간 날 때’ 하던 때와 달리 나의 태도가 변했다. 잔짜증을 부리는가 하면 이전에 아내가 하던 말을 내가 하게 된다.
빨래를 개며 가족을 발견하다
“밥그릇을 설거지통의 물에 좀 담그라고요. 밥알이 말라버리면 설거지할 때 힘들다고요.”
“왜 옷하고 양말을 뒤집어서 세탁기에 던져놓는 거야, 빨래 갤 때 두 번 일을 하게 되잖아.”
기왕에 해야 할 일이니 기껍게 하자고 다짐했건만 내가 이런 잔소리를 하게 될 줄 몰랐다. 더 창피한 건 내 말을 아이와 아내가 콧등으로도 안 듣는다는 것이다. 아들 녀석은 매번 말로만 알았다 하면 그만이고, 아내는 기분 나쁜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서는 내 엉덩이를 툭 치고 돌아서버린다. 지금은 아이와 아내가 협조를 해주고 나름대로 요령도 생겨서 익숙해졌지만 별것 아닌 거라고 생각했던 일에도 적응 과정이 필요했다.
빨래를 맡아 하면서 느낀 뜻밖의 즐거움도 있다. 요즘처럼 봄기운이 완연한 즈음, 거실 가장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따사로운 햇볕을 쬐어가며 주섬주섬 빨래를 개고 있자면 왠지 모를 마음의 평화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또 일상에서 잊고 지내던 가족의 소중함이랄까 하는 새삼스러운 상념에도 잠시 젖어보게 된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조막만 한 옷가지를 만지면서 천진한 사랑을 느끼고, 어느새 엄마 양말과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로 커진 빨래를 개면서는 잘 자라준 아이가 대견하다는 생각에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그럴 때 생각한다. “오늘은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꼭 안아줘야지” 하고. 아내의 빨래를 갤 때도 그런다. 아, 여자들 속옷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아내의 또 다른 향기를 느낀다. 낡아빠진 양말이며 팬티, 브래지어를 보면서는 “아니 우리가 속옷 살 돈이 없을 만큼 가난한 것도 아닌데 이런 걸…” 하면서 쓰레기통에 던지며 짠한 마음이 밀려들기도 한다. 그럴 때 생각한다. “오늘 당장 이 사람 속옷을 사줘야지” 하고.
가끔씩 나는 빨래를 개면서 행복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마음이 평화롭고 아이와 아내에게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이 순간이 어쩌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걸 ‘소시민 의식’이라고 하나. 아니면 ‘생활의 발견’이라고 하나.
요즘 내가 일하는 현장에 현안이 생겨서 노동조합의 현장 간부들과 얘기할 기회가 잦았다. 현장 간부들은 하나같이 노동조합 못해먹겠다고, 조합원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열정이 많았던 간부일수록, 젊은 간부들일수록 더했다.
“○○○, ○○○들은 노조에 협조하지 않고 관리자들 눈치만 본다. 그러면서도 불평불만은 제일 많다.”
“우리 사회에서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가는 노동자가 얼마나 되겠나.”
“그것도 정도껏이지, 더 이상 저런 인간들 위한다고 내가 피해만 보면서 고생할 필요를 못 느껴요. 저 사람들도 당해봐야 돼요.”
“당하면 그 사람들만 당하나, 우리 모두가 당하는 거야. 그렇게 당하면서 살 수 있겠어?”
“못 살 것도 없죠.”
맞다. 못 살 것도 없다. 아니 대체로 현장에서 노조간부를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볼 때, 이들이 정부와 자본이 신봉하는 경쟁과 이윤 논리를 받아들이기로 작정한다면 확실히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 조합원들은 얄미운 모습으로 불쑥불쑥 나타난다. 노동조합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은 나서지 않으려 하고, 기왕에 나선 사람에게 협조는 인색하고 비판은 넘쳐난다. 조합원들의 이런 경향성은 정부와 자본의 술수가 늘어가고 강도가 세지는 노동통제 전략 탓에 그 정도가 심해지는 양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세상이 달라지니 대중도 변해가겠지만 진짜 문제는 이런 현실 앞에서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것 아닐까.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운동
나는 격정에 사로잡힌 노동조합의 젊은 간부들에게서 운동이 더 구체적이고 섬세해질 이유를 느낀다. 기왕에 하는 일이라면 재밌고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앞장서서 노동조합이나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남 이전에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라는 주체적인 자각, 얄밉게만 보였던 ○○○에게서 인간적 감동을 발견하는 탐구, 승리보다는 패배가 가까운 현실에서 ‘아름다운 패배’나 ‘지고도 이긴 싸움’을 생각해보는 일, 익숙한 것에서 발견하는 새로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에서 터득하는 익숙함. 그리고 오늘 우리끼리 힘겹게 겪어내고 있는 사소함이, 내일 우리의 궁극적인 승리와 대면하는 것임을….
‘운동의 발견’ ‘생활의 발견’이 필요함을 느낀다.